지도에서 섬 하나가 사라졌다(잠실이 강북 섬에서 강남 육지가 된 이유)
지금 서울 지도를 펼쳐보면 잠실은 누가 봐도 한강 남쪽에 있습니다.
롯데월드타워와 석촌호수, 잠실종합운동장,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서울의 대표적인 강남권 중심지죠.
그런데 불과 50여 년 전 지도를 펼쳐보면 놀라운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의 잠실이 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섬'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서울은 이 섬을 개발하기 위해 단순히 땅을 메운 것이 아니라 한강의 물길 자체를 바꿨습니다. 그 과정에는 정치자금 스캔들, 흙이 모자라 연탄재까지 쏟아부은 공사 비화, 그리고 물에 잠겨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까지 얽혀 있습니다.

오늘은 잠실이 어떻게 섬에서 육지가 되었는지,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잠실은 원래 강북이었다"는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옛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한 줄 요약 잠실은 원래 한강의 하중도(모래섬)였고, 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을 거치면서 남쪽 육지와 연결됐습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그 과정에서 남겨진 옛 한강 본류(송파강)의 흔적입니다. |
목차
1. 지금의 잠실은 원래 한강의 섬이었다
현재의 잠실 모습을 먼저 떠올려 보겠습니다. 롯데월드타워가 솟아 있고 주변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상업시설, 종합운동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이 일대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잠실도를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에 있었던 '하중도(河中島)'라고 설명합니다. 하중도는 강물이 운반한 모래와 자갈이 유로 변동으로 고립되면서 하천 내부에 만들어지는 섬입니다. 한강에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바뀌고 자연제방이 침식되면서 잠실 일대에 거대한 모래섬이 형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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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잠실 주변의 한강은 지금처럼 하나의 물길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잠실섬을 사이에 두고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흘렀습니다.
• 북쪽 물길 — 신천강(새내) : 뚝섬 방향에서 광진교를 지나 흐르던 물길로, 폭이 지금 한강의 절반 이하였습니다.
• 남쪽 물길 — 송파강 : 당시 한강의 본류로, 지금의 석촌호수 자리와 신천역 남쪽을 지나 잠실종합운동장 부근에서 탄천과 합쳐졌습니다.
이 두 물길 사이에는 잠실섬(약 360만 평)과 또 다른 모래섬인 부리도(浮里島)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 대신 뽕나무밭과 농경지, 백사장이 펼쳐진 전혀 다른 풍경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왜 이름이 '잠실'일까?
잠실이라는 지명에도 재미있는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잠실은 한자로 蠶室이라 씁니다.
蠶(잠) : 누에 잠 / 室(실) : 집 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누에를 기르는 곳'입니다.
송파구청 공식 자료에 따르면 조선 세종 때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지금의 서대문구 연희동 쪽 '서잠실'과 함께 이곳에 '동잠실'을 설치했습니다. 잠실마다 뽑아낸 실을 승정원에 바치게 하고, 그 정교함과 수량에 따라 상벌을 내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누에치는 사람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궁궐의 환관을 감독관으로 보내 생산 실적을 점검하게 했다고 합니다.
즉 '잠실'은 현대에 만들어진 지명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누에치기의 흔적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의 지명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참고로 서초구 잠원동 역시 원래 '신잠실'이라 불리다가, 잠실동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잠(蠶)'자와 인근 신원리의 '원(院)'자를 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 안에 '잠실'이 두 곳 있었던 셈입니다.
3. 1971년, 서울은 한강의 지도를 바꾸기로 했다
1960~70년대 서울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대규모 택지가 필요했고, 동시에 한강 주변의 잦은 수해를 해결하기 위한 치수사업도 시급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수해가 잦았던 한강의 섬 잠실을 매립해 개발하는 계획이 1971년 본격 착수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비화가 얽혀 있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 매립 사업권을 둘러싼 뒷거래 서울시는 1969년 1월 건설부에 잠실섬 공유수면 매립 인가를 신청했으나 곧 반려됐습니다. 당시 총리가 5개 대형 건설사에 매립 공사 이권을 넘기는 대신 정치자금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훗날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후 1970년 반포지구 매립을 맡았던 현대건설·대림산업·극동건설의 합작사 '경인개발㈜'이 삼부토건·동아건설과 함께 새로 사업을 따내면서, 1971년 2월에야 실제 물막이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
1971년 2월 17일, 잠실섬 남쪽을 흐르던 송파강을 막는 물막이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동시에 섬의 북동쪽 자락을 잘라내 북쪽 신천강의 폭을 넓히는 하천 절개공사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마지막 물막이 작업은 그해 4월 15~16일 이틀에 걸쳐 12시간 동안 이어졌는데, 이를 위해 청평댐 발전소가 발전을 일시 중단하고 수위를 낮춰 강물의 속도를 늦추기까지 했습니다.
4. 흙이 모자라 연탄재까지 쏟아부은 공사
잠실 매립공사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섬을 육지로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흙이 필요했는데, 섬을 깎아낸 흙과 강바닥에서 퍼낸 토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공사장 인근의 언덕까지 허물어 흙을 조달했고, 그래도 모자란 부분은 연탄재 등 폐자재로 메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1960~70년대 한강 개발 전반의 공통된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한강 제방 공사에서 출발했는데, 제방 안쪽의 하천부지가 그대로 택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울시가 이촌동·반포동·압구정동 등 곳곳에서 같은 방식의 '공유수면 매립'을 이어갔습니다. 잠실 역시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5. 물에 잠긴 마을, 그리고 남은 이름들
매립공사로 사라진 것은 섬만이 아니었습니다. 잠실섬에는 원래 두 개의 자연마을이 있었습니다. 북쪽은 신천리(새내마을), 남쪽은 잠실리라 불렸습니다.
신천강을 한강의 새 본류로 넓히는 공사 과정에서 북쪽의 신천리 마을은 그대로 물에 잠겼습니다. 지금의 엘스·리센츠 아파트 한강변 자리가 옛 신천리가 있던 곳입니다. 수몰된 주민들은 지금의 잠실새내역(옛 신천역) 인근으로 집단 이주했는데, 이때 이주민들이 새로 꾸린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마을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잠실새내역이 한동안 '신천역'으로 불렸던 것도 옛 신천리 주민들이 이 일대에 많이 정착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잠실섬과 함께 사라진 또 하나의 섬도 있습니다. 탄천 하구에 있던 '부리도(浮里島)'입니다. 성내천과 송파강이 만나는 지점의 부렴마을이 있던 자리로, 지금은 잠실 아시아선수촌공원 입구에 옛 주민들이 세운 '부리도' 기념탑만이 그 흔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6. 결국 '잠실섬'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잠실 개발의 핵심은 단순히 섬 위에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의 흐름 자체를 바꾸고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였습니다.
송파구청의 행정구역 변천 자료는 이 변화를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971년 물막이 공사로 잠실섬 남쪽의 송파강이 막히면서 잠실은 남쪽 육지와 '연육(連陸)'되었습니다. 연육이란 '섬과 육지를 연결한다'는 뜻입니다. 즉 잠실섬이 어딘가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물길과 지형을 인공적으로 바꾸면서 남쪽 송파지역과 하나의 육지가 된 것입니다. 이 매립으로 약 2.5㎢(약 75만 평)의 새로운 육지가 조성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 지도에서 거대한 섬 하나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1980년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 모습. 잠실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국가기록사진]
7. 그런데 옛날 한강이 아직 남아 있다
여기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잠실 주변의 옛 물길을 전부 없앤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바로 석촌호수입니다.

서울미래유산은 석촌호수에 대해 원래 한강의 본류(송파강)였으나 1971년 물막이 공사로 유로가 바뀌면서 형성된 호수라고 설명합니다. 이후 1981년부터 산책로와 쉼터 등이 조성되며 지금과 같은 도심공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벚꽃을 보러 가고 산책을 하는 석촌호수는 단순히 도시개발 과정에서 새롭게 파놓은 인공호수가 아닙니다. 옛날 이곳으로 흐르던 한강 물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인 것입니다.
8. 잠실은 정말 '강북에서 강남이 된 것'일까?
여기에서 한 가지 팩트체크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서 잠실의 역사를 소개할 때 흔히 이런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 "잠실은 원래 강북이었는데 한강 물길을 바꾸면서 강남이 됐다." |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부정확합니다.
판정 : △ 절반의 사실
먼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보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송파구청 자료에 따르면 1973년 서울시 성동구 산하에 영동출장소가 신설되며 잠실동·신천동이 처음 행정구역으로 편제됐습니다. 이후 행정구역은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1973년 성동구 영동출장소(잠실동·신천동) → 1975년 강남구 신설·편입 → 1979년 강동구 분리·편입 → 1988년 송파구 분리·신설
현재의 송파구가 된 것은 1988년입니다. 즉 잠실은 '강남구' 시절을 거쳐 '강동구'를 거친 뒤에야 지금의 송파구가 되었으니, 단순히 '강북에서 강남으로'라는 설명은 중간 단계를 생략한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리적으로 '원래 강북 육지였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잠실은 애초부터 강북에 붙은 육지가 아니라 한강 가운데 떠 있던 하중도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 행정적으로는 강북 생활권인 성동구 관할의 한강 섬이었던 잠실이, 1971년 한강 매립사업을 통해 남쪽 육지와 연결되고 강남구·강동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의 강남권 잠실이 되었다. |
'강북 땅이 강남으로 이동했다'기보다는 '한강의 섬이 남쪽 육지와 연결되고,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강남권에 편입됐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9. 한 눈에 보는 잠실의 과거와 현재
| 구분 | 과거 | 현재 |
| 잠실 | 한강의 하중도(모래섬) | 서울 동남권 핵심 도심 |
| 주변 한강 | 섬을 사이에 둔 신천강·송파강 두 물길 | 현재의 한강 본류(옛 신천강 확장) |
| 남쪽 옛 물길(송파강) | 잠실섬 남쪽을 흐르던 한강 본류 | 대부분 매립되어 육지화 |
| 석촌호수 | 한강 물길의 일부 | 도심 속 호수공원 |
| 신천리 마을 | 잠실섬 북쪽의 자연마을 | 수몰 후 잠실새내역 인근 '새마을시장'으로 이주 |
| 토지 이용 | 뽕밭·농경지·백사장 | 아파트·상업시설·종합운동장 |
10. 지금도 잠실 곳곳에서 과거를 찾을 수 있다
50여 년 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석촌호수입니다. 지금은 롯데월드와 벚꽃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지만, 지형의 역사를 알고 보면 과거 한강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잠실새내역 인근의 새마을시장을 걷다 보면 이곳이 수몰된 신천리 주민들이 새로 일군 마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시아선수촌공원 입구의 부리도 기념탑 역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흔적입니다.
그리고 잠실이라는 이름 자체가 수백 년 전 누에를 키우던 뽕밭의 역사를 지금까지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지명과 시장 이름, 호수의 모양 자체가 하나의 역사 기록인 셈입니다.
11. 지도를 바꿔버린 도시, 잠실
현재의 잠실을 걷다 보면 과거 이곳이 섬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불과 50여 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강 가운데 모래섬이 있었고, 섬 주변으로 강물이 갈라져 흘렀습니다. 그리고 1971년 시작된 한강 매립사업을 통해 물길이 바뀌고 잠실은 남쪽 육지와 연결됐습니다. 그 과정에는 정치자금을 둘러싼 뒷거래, 흙이 모자라 연탄재까지 쏟아부은 공사 현장, 그리고 고향을 잃고 이주해야 했던 신천리 주민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강의 섬 하나가 지도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잠실이라는 도시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옛 한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석촌호수라는 모습으로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습니다.
다음에 석촌호수를 걷게 된다면 호수를 한번 천천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보고 있는 물 위로 과거에는 배가 오가고, 그 너머에는 한강 한가운데 떠 있던 잠실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서울의 땅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잠실 역사 핵심 팩트체크
| 궁금증 | 판정 | 근거 |
| 잠실은 원래 섬이었다? | ✅ 사실 | 한강에 형성된 하중도(약 360만 평)였다. |
| 잠실 이름은 누에와 관계있다? | ✅ 사실 | 조선 세종 때 양잠 장려를 위한 '동잠실' 설치에서 유래했다. |
| 석촌호수는 옛 한강이었다? | ✅ 사실 | 1971년 유로 변경 후 남은 옛 송파강(한강 본류)의 흔적이다. |
| 잠실은 원래 강북이었다? | △ 절반의 사실 | 행정상 성동구였지만 지리적으로는 한강의 섬이었다. |
| 매립 사업권을 둘러싼 정치자금 의혹이 있었다? | ✅ 사실 | 1969년 매립 인가가 반려된 배경에 정치자금 제공 정황이 있었다는 것이 훗날 알려졌다. |
| 신천리 마을은 수몰됐다? | ✅ 사실 | 신천강 확장 과정에서 수몰됐고, 이주민들이 새마을시장을 이뤘다. |
| 1971년 잠실이 강남 육지와 연결됐다? | ✅ 사실 | 송파구 공식 기록에도 '연육'으로 기록돼 있다. |
| 현재 송파구가 된 것은 1971년이다? | ❌ 아님 | 송파구는 1988년 강동구에서 분리·신설됐다. |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잠실도」·「잠실리 뽕나무」 · 서울특별시 서울미래유산 「석촌호수」 · 서울역사박물관 「강남으로, 강남으로」 · 송파구청 「동명유래/연혁」 · 위키백과 「잠실섬」·「신천동(서울)」·「잠실동」 · 한강역사이야기마을(송파구) 「자양반도에서 잠실 섬 그리고 국제역사문화도시로 변모한 잠실」·「부리도 부렴마을」 · 경향신문 「[어제의 오늘] 1969년 서울시, 잠실 매립 추진」 · 오피니언뉴스 「[도시탐험, 서울이야기] 흙이 모자라 연탄재도 쏟아부은 잠실 매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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