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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리(裡里)'라는 도시를 아시나요?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보면 과거에는 분명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도시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곳이 바로 전라북도 '이리'입니다.

 

지금의 2030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리는 호남을 대표하는 철도 중심 도시였습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이리시

 

그런데 왜 이 거대한 도시는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지금의 '익산(益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재난 중 하나였던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목차

     

    🚂 호남 최고의 교통 요충지, '이리'의 전성기

    원래 '이리' '속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철도 건설과 함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리역

     

    이리역

     

     

    호남선과 전라선 철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선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렸고, 철도 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광복 이후에도 이리의 발전은 계속됐습니다. 1970년대 이리역 주변은 상점과 여관, 음식점이 밀집한 호남 최대 상권 중 하나였으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말이 전해질 만큼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힘이 있던 도시였습니다.

     

    “이리에 가서는 돈 자랑하지 말고, 주먹 자랑하지 말라.”

     

    하지만 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찾아옵니다.

     

     

    💥 1977 11 11일 밤 9 15, 도시가 흔들리다

    1977 11 11일 밤 9 15, 이리역에 정차해 있던 화물열차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합니다.

     

     

     

     

     

    사고의 발단은 인천에서 광주로 향하던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열차였습니다.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 914상자를 비롯해 뇌관 등 약 30톤에 달하는 폭발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화약을 호송하던 직원이 어두운 화물칸에서 촛불을 켜둔 채 잠이 들었고, 불씨가 화약 상자로 옮겨붙으며 대참사로 이어졌습니다.

     

    폭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구분 수치
    폭발 규모 반경 500m 이내 건물 대부분 파괴
    폭발 구덩이 직경 약 30m, 깊이 약 15m
    사망자 59
    부상자 1,300
    이재민 8,000(자료에 따라 최대 1만 명)

    인명·재산 피해 수치는 당시 전라북도 공식 집계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자료에 따라 세부 수치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철도의 발전으로 성장했던 도시가, 바로 그 철도 시설 때문에 한순간에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 “내 머리를 딛고 내려와” — 대한민국 연예계에 남은 기적의 순간

    이 사고는 단순한 도시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삶을 뒤흔든 비극이었고, 당시 현장에는 연예인들도 있었습니다.

     

    사고 당일 밤, 이리의 한 극장에서는 가수 하춘화의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히트곡 무대를 마치고 분장실에서 다음 순서를 준비하던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극장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때 함께 무대에 있던 무명 코미디언 이주일이 자신도 크게 다친 몸으로 하춘화를 이끌고 무너진 잔해를 헤쳐 나왔습니다.

     

    💬 하춘화가 훗날 전한 그날의 기억

    극장 지붕이 무너져서 담을 넘어야 했는데, 이주일 씨가 먼저 담을 넘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가 다쳤는데도내 머리를 딛고 내려와라고 하더라.”
    이주일은 이 과정에서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4개월 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훗날하춘화를 구한 남자로 알려지며 1980년대 코미디언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 재난 현장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린 이 이야기는 이리역 폭발 사고가 남긴 또 하나의 인간적인 기록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 폐허에서 다시 태어난 도시, 그리고 '익산'

    폭발 사고 이후 정부는 대대적인 복구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무너진 도시는 다시 설계되었고, 기존의 복잡한 구도심은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정비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고는 이리를 현대적인 도시 구조로 재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이리 = 폭발 사고가 발생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5,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도농통합)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당시 이리시는 익산군과 통합을 추진하게 되었고, 통합 도시의 이름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중심 도시였던 '이리'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새로운 선택을 합니다. 바로 '익산(益山)'이라는 이름입니다.

     

    '더할 익()', '뫼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익산은 지역의 역사성과 새로운 미래를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출발을 선택한 것입니다.

     

     

    💡 오늘의 지리 잡학 포인트

    이리는 단순히 행정구역 이름이 바뀐 도시가 아닙니다.

     

    철도의 힘으로 성장했고, 철도 시설 사고로 큰 상처를 입었으며, 결국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도시입니다.

    지금 KTX를 타고 쾌적한 익산역을 지나간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세요. 불과 40여 년 전 이곳은 대한민국 최대 철도 도시 중 하나였던 '이리'였고, 엄청난 재난을 딛고 다시 일어난 도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도시에 붙은 이름 하나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남고 극복해 온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디지털익산문화대전, 한국일보(2021.11.4), 인천투데이(2024.11.11), 원도연(2022),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와 근대적 국가주의 연구」, 「지역사회연구」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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